【판결인덱스】

대법원 2015모2229

재심인용결정에대한재항고

2019년 3월 21일 선고3심(상고심)전원합의체 결정
선고 결과
전원합의체 결정
형량은 원심 판결에 있습니다
기소·공판 검사
상고심 판결문에 없음
변호한 사람
기재 없음

대법원은 2019년 3월 21일 3심(상고심) 판결에서 전원합의체 결정 판결을 했습니다. 재판장 대법관은 김명수, 함께 판결한 대법관은 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김재형·박정화·안철상·민유숙·김선수·이동원·노정희·김상환입니다.

【주  문】

재항고를 기각한다.

상고심은 원심의 판단이 옳은지만 정합니다. 실제 형량은 원심 판결에 있습니다.

【판시사항】

[1] ‘여순사건’ 당시 내란 및 국권문란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그 판결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피고인들의 유족들이 그 후 위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여 재심개시결정이 있게 되자 검사가 재항고를 한 사안에서, 위 재심대상판결에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2] ‘여순사건’ 당시 내란 및 국권문란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그 판결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피고인들의 유족들이 그 후 위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여 재심개시결정이 있게 되자 검사가 재항고를 한 사안에서, 유죄의 확정판결로서 재심의 대상이 되는 위 재심대상판결이 존재한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다수의견] ‘여순사건’ 당시 내란 및 국권문란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그 판결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피고인들의 유족들이 그 후 위 판결(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여 재심개시결정이 있게 되자 검사가 재항고를 한 사안에서, 형사소송법 제415조에서 정한 재항고의 절차에 관하여는 형사소송법에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성질상 상고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여야 하고, 사실인정의 전제로서 하는 증거의 취사선택과 증거의 증명력은 사실심 법원의 자유판단에 속하는 점, 형사재판에서 심증형성은 반드시 직접증거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로 할 수도 있는 점, 재심의 청구를 받은 법원은 재심청구 이유의 유무를 판단함에 필요한 경우 사실을 조사할 수 있고(형사소송법 제37조 제3항), 공판절차에 적용되는 엄격한 증거조사 방식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닌 점 및 대한민국헌법(1948. 7. 17. 제정된 것, 제헌헌법) 제9조, 구 형사소송법(1948. 3. 20. 군정법령 제176호로 개정된 것) 제3조, 제6조 등의 규정, 그리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여순사건 진실규명결정서를 비롯한 기록에서 알 수 있는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은 여순사건 당시 진압군이 순천지역을 회복한 후 군경에 의하여 반란군에 가담하거나 협조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감금되었다가 내란죄와 국권문란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유죄판결을 받았고, 피고인들을 체포·감금한 군경이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하는데도 이러한 구속영장 발부 없이 불법 체포·감금하였다고 인정하여 재심대상판결에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이동원의 반대의견] 위 사안에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는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재심사유로 규정하되 그 증명방법을 확정판결만으로 제한하였고, 제422조도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경우 다른 방법으로 증명할 길을 열어두고 있으나 그 증명은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하므로 그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데, 원심결정 이유를 비롯하여 기록을 살펴보아도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그러한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어 확정판결을 대신할 수 있는 경우라고 보기 어려운 점, 여순사건 당시로부터 이미 70년의 세월이 지났으므로 그때 존재하였던 증거들이 멸실되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나, 형사소송법은 장기간이 경과하였다는 사정에 대하여 그로 인하여 공소시효가 완성한 경우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다른 방법에 의한 증명을 허용하고 있을 뿐 증명의 정도를 완화하고 있지는 않으므로(형사소송법 제422조), 설령 장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사법경찰관의 직무범죄를 증명할 충분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게 된 경우라도 법원으로서는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의 증명이 없는 이상 증거부족을 이유로 재심청구를 기각하여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사법경찰관이 구속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피고인들을 체포·구속하였다고 인정한 것은 증거가 아닌 막연한 추측에 기초한 것으로서, 이러한 잘못된 전제에서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에 관한 증명이 있다고 본 원심판단은 법령을 위반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현저하게 벗어나 위법하다고 한 사례. [2] [다수의견] ‘여순사건’ 당시 내란 및 국권문란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그 판결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피고인들의 유족들이 그 후 위 판결(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여 재심개시결정이 있게 되자 검사가 재항고를 한 사안에서, 재심대상판결의 판결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판결의 존재와 판결서의 존재는 구별되는 것이고, 재심대상판결의 존재, 즉 판결의 선고와 확정 사실은 계엄지구사령부 사령관 명의로 작성된 고등군법회의명령 제3호 문서(이하 ‘판결집행명령서’라 한다), 당시의 언론보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여순사건 진실규명결정서 등 다른 자료를 통하여 인정할 수 있는 점, 재심대상판결의 판결서 원본이 작성되었으나 사변 등으로 멸실·분실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설령 처음부터 판결서가 작성되지 않았더라도 판결이 선고되고 확정되어 집행된 사실이 인정되는 이상 판결의 성립을 인정하는 데에는 영향이 없는 점, 여순사건 당시 선포된 계엄령과 그 계엄령 선포에 따라 설치된 군법회의에 대하여 법적 근거와 절차 등의 위헌·위법 논란이 있으나, 대한민국헌법(1948. 7. 17. 제정된 것, 제헌헌법) 제64조, 제76조 제2항, 제100조 아래 이루어진 계엄선포 상황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사법작용으로서 군법회의를 통한 판결이 선고된 이상 그 근거법령이나 절차, 내용 등이 위헌·위법하다고 평가되어 판결이 당연무효가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판결의 성립을 부정할 수는 없는 점, 또한 판결이 위와 같은 위헌·위법 사유로 당연무효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성립한 이상 형식적 확정력은 인정되고, 오히려 그러한 중대한 위헌·위법 상태를 바로잡기 위하여 재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며, 이러한 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통한 구제를 긍정하는 것이 유죄의 확정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바로잡는다는 재심제도의 존재 목적에도 부합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유죄의 확정판결로서 재심의 대상이 되는 재심대상판결이 존재한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이기택의 반대의견] 위 사안에서,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할 만한 근거로는 ‘판결집행명령서’와 관련 언론보도가 있는데, 근본적으로 판결집행명령서의 기재 자체가 허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언론보도 내용은 당시 군법회의 측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보도한 것에 불과하여 별개의 독립한 증거라고 보기 어려운 점, 다수의견이 판결로서 인정하고 있는 재심대상판결에는 당시 계엄선포의 합헌성 내지 적법성, 일제 계엄령의 규범력, 군법회의의 설치근거 및 민간인에 대한 재판권 여부, 법무관 1인에 의한 단심 사형판결의 문제, 공소제기의 존부와 공소사실의 특정 여부, 공판의 개정 및 증거조사의 실시 여부, 판결서의 작성 여부 및 판결의 선고방법 등에 관하여 수많은 의문이 있고, 판결집행명령서나 그 밖에 어디에도 위와 같은 재판으로서의 요건과 절차, 판단의 실체 등에 관한 아무런 정보가 없으므로, 판결집행명령서에 기재된 바와 같은 재판이 실제로 있었더라도 이를 규범적 의미에서 재판으로서 성립·존재한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점, 군경들이 피고인들을 구속영장 발부 없이 체포·감금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와 같은 체포·감금이 어떤 혐의에 관한 것이었는지, 다수의견이 말하는 재심대상판결이 위 혐의에 관한 것이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이상 재심사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고, 엄밀히 표현하면 재심사유에 대한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점, 재심을 개시하더라도 공소사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워 재심본안에서의 결론은 무죄판결이 아닌 공소기각판결이 될 가능성이 크고, 재심을 통하여 형사보상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높지 않으며, 재심을 허용하더라도 재심본안에서 실체적 진실 규명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할 때 재심을 개시하는 것이 당초의 의도 내지 취지와 달리 희생자들에 대한 현실적인 구제가 되지 못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재심대상 확정판결은 존재한다고 볼 수 없고, 설령 판결이 존재한다고 보더라도 재심은 가능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타당하지도 않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구 헌법(1952. 7. 7. 헌법 제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헌헌법) 제9조(현행 제12조 참조), 제64조(현행 제77조 참조), 제76조(현행 제101조, 제102조 참조), 부칙(1948. 7. 17.) 제100조, 구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 형법의 제정으로 폐지) 제77조(현행 형법 제87조 참조), 제194조(현행 형법 제124조 참조), 구 형사소송법(1954. 9. 23. 법률 제341호 형사소송법이 제정되기 전의 것) 제3조(현행 제200조의2, 제200조의3, 제201조, 제212조 참조), 제6조(현행 제200조의2 제5항, 제200조의4, 제213조의2 참조), 형사소송법 제37조 제3항, 제307조, 제308조, 제415조, 제420조 제7호, 제422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1조, 제3조 / [2] 구 헌법(1952. 7. 7. 헌법 제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헌헌법) 제64조(현행 제77조 참조), 제76조(현행 제101조, 제102조 참조), 부칙(1948. 7. 17.) 제100조, 구 국방경비법(1962. 1. 20. 법률 제1004호 군법회의법 부칙 제6조로 폐지) 제51조, 구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 형법의 제정으로 폐지) 제77조(현행 형법 제87조 참조), 형사소송법 제42조, 제415조, 제420조, 형사소송규칙 제28조, 제166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1조, 제3조,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제26조 제1항 제1호, 제2항
판결 이유 전문 펼치기
재항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건의 경위와 쟁점 가. 재심청구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이 사건 재심을 청구하였다. 피고인들은 여순사건 당시인 1948. 11. 14.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에서 구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 형법의 제정으로 폐지된 것, 이하 같다) 제77조 내란죄, 포고령 제2호 국권문란죄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판결이 확정되어(이하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는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등의 재심사유가 있으므로 재심을 개시하여야 한다. 나. 제1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는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판단하여 재심개시결정을 하였다. (1) 여수 ○○연대 소속 일부 군인들이 1948. 10. 20.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한 출항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 여수, 순천 등 지역을 점령하였으나, 정부 진압군이 1948. 10. 말 여순지역을 탈환하였다. (2) 진압군 탈환 이후 군경은 반란군에 협조했다고 지목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재판도 받지 않고 총살되었고 나머지는 군법회의에 회부되거나 석방되었다. (3) 피고인 1은 1948. 10. 말 △△국 소속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철도직원은 나와서 일하라.’는 연락을 받고 출근하였다가 순천역 광장에서 다른 동료 직원들과 함께 경찰에 체포·연행되어 순천역 옆에 있는 △△국 창고에 감금되었다. 피고인 2는 1948. 10. 말 순천시 ◈◈면 □□리 마을에서, 피고인 3은 1948. 10. 말 순천시 ◇◇면 ☆☆리 마을에서 경찰에 체포·연행되어 순천경찰서에 감금되었다. (4)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는 1948. 11. 14. 피고인들에게 구 형법 제77조 내란죄, 포고령 제2호 국권문란죄로 사형을 선고하였고 그 무렵 위 판결이 확정되었다. (5) 위 판결은 1948. 11. 24. 판결심사장관의 승인을 받고 그 무렵 집행되어 피고인들은 1948. 11. 말 사망하였다. (6) 피고인들에 대한 위와 같은 구속과 재판과정 등이 가족들에게 통지되지 않았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정리위원회’라 한다)가 여순사건과 관련한 문서를 조사한 결과 영장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영장이 발부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도 없다. (7) 피고인들은 위와 같이 법원이 발부한 사전 또는 사후 영장 없이 불법 체포·감금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경찰관들의 위와 같은 불법 체포·감금은 대한민국헌법(1948. 7. 17. 제정된 것, 이하 ‘제헌헌법’이라 한다) 제9조, 구 형사소송법(1948. 3. 20. 군정법령 제176호로 개정된 것, 이하 같다) 제3조, 제6조에서 정한 인신구속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구 형법 제194조에서 정한 특별공무원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 위 특별공무원 직권남용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422조에서 정한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는데도 유죄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한다. 다. 검사는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피고인들을 불법 체포·감금하였다는 직무상 범죄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며 즉시항고를 하였다. 라. 원심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제1심을 유지하고 검사의 즉시항고를 기각하였다. (1)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가 피고인들을 포함한 254명에 대하여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를 열었고 1948. 10. 23. 순천 탈환 이후 불과 22일 만인 1948. 11. 14. 피고인들을 포함한 102명에 대하여 판결로 사형을 선고하였으며 그 후 곧바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정리위원회의 방대한 조사결과에도 불구하고 영장이 발부되었음을 추단할 만한 자료가 없다. (2) 이러한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은 법원이 발부한 사전 또는 사후 영장 없이 체포·구속되었다. 제1심이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저질렀음이 증명되었다고 인정한 것은 정당하다. 마. 검사가 즉시항고에서 한 것과 같은 주장을 하며 이 사건 재항고를 하였다. 바. 이 사건의 쟁점은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 즉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피고인들을 불법 체포·감금하였다고 인정한 원심의 사실인정이 적법한지 여부이다. 그리고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존재 여부도 문제 된다. 2.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의 존재 가. (1) 제헌헌법 제9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과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 단, 범죄의 현행·범인의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수사기관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후에 영장의 교부를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 구 형사소송법 제3조는 ‘누구든지 구속당할 자의 성명 및 피의사건을 기재한 재판소가 발한 구속영장 없이는 신체의 구속을 받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예외로서 ‘다음 사항의 하나에 해당하며 또한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정하며 ‘①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를 갖지 않은 경우, ② 그 장소에 있고 없음을 불문하고 형사소송법 제130조에 규정한 현행범인 경우. 그러나 범행 종료 후 48시간 이내에 신체를 구속하는 경우에 한한다. ③ 현행범의 취조에 의하여 공범을 발견한 경우. 그러나 범행 종료 후 48시간 이내에 신체를 구속하는 경우에 한한다. ④ 기결의 수인 또는 법령에 의하여 구속된 자가 도망한 경우, ⑤ 사체의 검증에 의하여 범인을 발견한 경우, ⑥ 피의자가 죄증을 인멸할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경우, ⑦ 피의자가 도망할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경우, ⑧ 피의자가 사형, 무기 또는 장기 1년 이상의 유기의 징역·금고에 처할 수 있는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정하고 있다. 제6조는 ‘검찰관, 사법경찰관 또는 기타 관헌이 제3조에 의하여 구속영장 없이 신체를 구속한 경우에는 서울시와 재판소가 있는 부, 군, 도에서는 그 구속한 때부터 48시간 이내에, 재판소가 없는 부, 군, 도에서는 5일 이내에 재판소로부터 구속영장의 발부를 얻어야 한다. 위 기간 내에 구속영장의 발부를 얻지 못한 경우에는 구속당한 자를 즉시 석방하여야 한다.’고 정하였다. (2) 형사소송법 제415조는 재항고에 관하여 "항고법원 또는 고등법원의 결정에 대하여는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음을 이유로 하는 때에 한하여 대법원에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러한 재항고의 절차에 관하여는 형사소송법에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그 성질상 상고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여야 하고(대법원 1982. 8. 16. 자 82모24 결정, 대법원 2012. 10. 29. 자 2012모1090 결정 등 참조), 사실인정의 전제로서 하는 증거의 취사선택과 증거의 증명력은 사실심 법원의 자유판단에 속한다(대법원 1987. 2. 3. 자 86모57 결정, 대법원 2018. 5. 2. 자 2015모3243 결정 등 참조). (3) 형사재판에서 심증형성은 반드시 직접증거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로 할 수도 있다(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4도2221 판결,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10도5948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재심의 청구를 받은 법원은 재심청구 이유의 유무를 판단함에 필요한 경우에는 사실을 조사할 수 있으며(형사소송법 제37조 제3항), 공판절차에 적용되는 엄격한 증거조사 방식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 재항고이유 주장은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법원의 사전 또는 사후 영장 없이 피고인들을 불법 체포·감금하였다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 이른 사실인정이 잘못되었다는 내용으로서 실질적으로 사실심 법원의 자유판단에 속하는 원심의 증거 선택과 증명력에 관한 판단을 다투는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위에서 보았듯이 당시 많은 민간인들이 반란군에 협조한 혐의로 즉석에서 처형되기도 하고 일부는 연행된 후 조사를 받고 즉결대상자로 결정되어 사살되거나 군법회의에 회부된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정리위원회의 순천지역 여순사건 진실규명결정서(이하 ‘진실규명결정서’라 한다)에는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들에 대한 체포·감금이 일정한 심사나 조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후 조사과정에서 비인도적인 취조와 고문이 자행되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피고인들의 체포·감금 과정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서 내용도 이에 부합한다. 이와 같이 민간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연행된 다음 즉결처분 또는 군법회의 회부로 나뉘었으므로 연행 당시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 위와 같은 법리와 관련 규정들 그리고 기록에서 알 수 있는 사정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인들은 여순사건 당시 진압군이 순천지역을 회복한 후 군경에 의하여 반란군에 가담하거나 협조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감금되었다가 내란죄와 국권문란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유죄판결을 받았고, 피고인들을 체포·감금한 군경이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하는데도 이러한 구속영장 발부 없이 불법 체포·감금하였다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가 있다고 인정한 제1심을 유지한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 3.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존재 가. 제1심과 원심은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사실을 인정하였고, 검사도 원심에 이르기까지 이를 다투지 않았으며, 재항고심에서도 이를 다투지 않는다. 나아가 이에 관하여 살펴보아도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구체적인 판단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판결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이 판결의 존재와 판결서의 존재는 구별되는 것이고,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존재, 즉 판결의 선고와 확정 사실은 다른 자료를 통하여 인정할 수 있다. (1) 재심청구의 대상은 유죄의 확정판결이다(형사소송법 제420조). 판결은 선고함으로써 성립하고, 공판정에서는 판결서에 따라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42조). 판결과 판결서는 개념적으로 다르다. 판결의 선고내용과 판결서의 내용이 다르면 선고된 내용에 따라 판결의 효력이 발생하고, 판결서는 판결의 내용을 확인하는 문서일 뿐 판결서가 판결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대법원 1973. 10. 10. 선고 73다555 판결, 대법원 1981. 5. 14. 자 81모8 결정 등 참조). 따라서 판결서가 작성되지 않았거나 작성된 다음 멸실되어 존재하지 않더라도 판결이 선고되었다면 판결은 성립하여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유죄 확정판결이라면 재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판결서가 존재하지 않지만,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다음 그 판결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사실을 뒷받침하는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 (가)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사령관 공소외 1 명의로 1948. 11. 24. 작성된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명령 제3호 문서(이하 ‘판결집행명령서’라 한다)가 존재한다. 위 문서에는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1948. 11. 14. 선고된 사실과 이 사건 피고인들을 포함한 피고인들의 성명·주소·직업, 공판장소, 죄목, 죄과, 범죄사실, 항변, 판정, 판결 내용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이어서 심사장관이 판결을 승인하고 집행을 명하며, 확인장관이 사형판결을 확인한다는 내용도 기재되어 있다. (나) 일간지인 ▽▽신문은 1948. 11. 17.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선고된 사실을 보도하였다. 위 기사는 판결의 심리를 담당한 국방부 법무관 공소외 2 중령이 1948. 11. 15. 순천 제2차 고등군법회의 결과를 발표하였다는 제목으로 사형언도 102명 등 형량별 인원을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사형언도를 받은 102명의 형집행은 확인장관의 확인을 얻은 후 수일 내 집행할 것이라는 등의 판결 결과 발표 내용을 게재하였다. (다) 진실규명결정서에도 정부가 계엄지구에서 고등군법회의를 설치하였고, 반란군 협조자로 지목된 민간인들 중 일부는 즉석에서 총살을 당했고 일부는 따로 수용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았다고 기재되어 있다. (라) 진실규명결정서에는 피고인들이 1948. 11. 말 군경에 의하여 사살되었다는 유족들의 진술과 정리위원회가 2009. 1. 7. 피고인들을 비롯한 민간인 439명이 순천지역 여순사건 직후 군경에 의하여 불법적으로 사살되었다고 진실규명결정을 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그에 부합하는 진술서가 있다. (3) 재심을 청구하려면 재심청구서에 원판결의 등본을 첨부하여 제출하여야 하고, 판결의 등본은 법원사무관 등이 원본에 의하여 작성하여야 한다(형사소송규칙 제166조, 제28조). 형사사건의 판결서 원본은 국가가 보존할 책임을 진다(검찰 보존사무규칙 제5조, 제18조, 군검찰 보존사무규칙 제5조, 제21조). 판결이 선고되었는데도 국가가 판결서 원본을 보존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피고인이나 재심청구인에게 지울 수는 없다. 판결서가 없다는 이유로 재심의 대상성을 부정한다면 판결서 부존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피고인 또는 재심청구인에게 지우는 것이 된다. 대법원은 재판서 등이 형집행에 절대로 필요하지는 않고 다만 증명자료로서 가장 적절하고 전형적인 것일 뿐이라며 원본이 멸실되어 등·초본의 작성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형의 종류 및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확히 하기에 족한 다른 증명자료를 첨부하여 재판 집행지휘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재판서 원본이 사변으로 분실된 사실을 인정한 예가 있다(대법원 1961. 1. 27. 자 4293형항20 결정).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판결서 원본이 작성되었으나 사변 등으로 멸실·분실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설령 처음부터 판결서가 작성되지 않았더라도 판결이 선고되고 확정되어 집행된 사실이 인정되는 이상, 판결의 성립을 인정하는 데에는 영향이 없다. 다. 여순사건 당시 선포된 계엄령과 그 계엄령 선포에 따라 설치된 군법회의에 대하여 법적 근거와 절차 등의 위헌·위법 논란이 있다. 제헌헌법에는 군법회의 또는 군사법원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으나, 국방경비법에는 군법회의에 관한 근거규정을 두었다. 대법원은 제헌헌법 제76조 제2항을 근거로 국방경비법에서 정한 군법회의 재판을 합헌이라고 판단하였다(대법원 1955. 5. 24. 선고 4288형상100 판결). 제헌헌법 제64조는 "대통령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한다."라고 정하여 계엄선포에 관한 헌법적 근거를 명시하였으나, 여순사건 당시에는 아직 계엄법(1949. 11. 24. 법률 제69호로 제정된 것)이 제정되지 않았다. 국방부 등 정부 기관은 1997년경 제주 4·3 사건 당시 계엄령에 관하여, 2010년경 여순사건 당시 계엄령에 관하여 제헌헌법 제100조에 따라 효력을 유지한 일제 계엄령에 따른 것이었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고, 이에 대하여 법리적인 논쟁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계엄선포 절차와 군법회의 등에 관하여 위헌·위법 논란이 있더라도, 위와 같은 제헌헌법 아래 이루어진 계엄선포 상황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사법작용으로서 군법회의를 통한 판결이 선고된 이상 그 근거법령이나 절차, 내용 등이 위헌·위법하다고 평가되어 판결이 당연무효가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판결의 성립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판결이 위와 같은 위헌·위법 사유로 당연무효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성립한 이상 형식적 확정력은 인정되고, 오히려 그러한 중대한 위헌·위법 상태를 바로잡기 위하여 재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통한 구제를 긍정하는 것이 유죄의 확정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바로잡는다는 재심제도의 존재 목적에도 부합한다. 라. 따라서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은 유죄의 확정판결로서 재심의 대상이 된다. 원심이 판결집행명령서를 판결문이라고 언급한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이 사건…

판결 이유가 길어 앞부분만 실었습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판례 (원문 보기). 판결문의 개인정보는 법원이 비실명 처리한 상태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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